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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놈이 동기중 유일하게 삼성 사장 돼”

김정훈 기자 runto@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1-12-08 10:07

"모교(母校) 출신 삼성 사장이 왔는데 박수 소리가 너무 작네. 더 쳐."

6일 오후 7시 충북 청주에 있는 청주대학교 콘서트홀. 이 대학 출신 박근희(58) 삼성생명 사장이 마이크를 잡고 농담을 던지자 강연장을 가득 메운 대학생 800여명이 웃음을 터뜨렸다.

박 사장은 이내 진지해졌다. "남들은 지방대 출신이 어떻게 사장까지 오를 수 있었느냐고 하지만, 나는 금관리(청원군 미원면) 촌놈에 상업고등학교(청주상고·현재 대성고)와 지방대 출신이라는 배경이 직장 생활을 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말문을 열었다.

1976년 졸업한 지 35년 만에 모교 강단에 선 선배를 맞는 후배들은 학교 곳곳에 '선배님 모교 방문을 환영합니다. 사진 한번 찍고 싶습니다'고 적은 현수막을 내걸었다. 삼성그룹이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마련한 전국 순회 토크 콘서트 '열정락서(樂書)'의 11번째 강연이었다.

실업계 고등학교(청주상고)와 지방대(청주대)를 나와 삼성그룹 최대 금융 계열사인 삼성생명의 최고경영자 자리까지 오른 박근희 삼성생명 사장이 6일 모교인 청주대를 찾아 후배들에게‘리더의 꿈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삼성그룹 제공

 

박 사장은 "난 모교를 한강 이남 최고 명문 사학(私學)이라고 당당히 말해 왔다. 한 번도 콤플렉스를 느껴본 적이 없다"고 후배들에게 말했다. 강연 슬라이드는 박 사장이 자란 시골집, 시골 분교, 그가 졸업한 상고, 청주대 사진을 차례로 비췄다. 당시 상고는 공부 잘하는 시골 출신이 스스로 선택해 들어가는 학교였다. 하지만 삼성이라는 대기업에서 지방대 졸업장으로 성공하는 게 녹록한 일은 아니다.

청주대 상학과를 졸업한 박 사장은 군 제대 후 1978년 삼성에 입사했다. 공채 동기 200여명이 가고 싶은 그룹 자회사를 1·2·3지망으로 나눠 쓰고 배치되던 시절이었다.

그는 삼성물산·제일모직·삼성전자를 1·2·3지망으로 써냈지만, 삼성SDI 수원공장 경리과로 발령 났다. 박 사장은 7일 기자와 전화 인터뷰에서 "꿈꾸던 자리는 아니었지만, 조직 내에서 경리 업무는 내가 최고여야 한다는 각오로 일했다"고 말했다. 26년 뒤 그는 동기 200명 중 유일하게 사장이 됐다.

한·중 수교 후인 1994년 하반기부터 그는 삼성SDI의 중국 공장 인수 업무를 맡았다. 그는 "그때부턴 적어도 삼성그룹 안에서 중국 얘기가 나오면 '박근희한테 물어봐라'는 말이 나오게 만들자는 마음으로 중국 현안을 샅샅이 훑었다"고 했다. 그의 지론은 단순했다. "박지성·이승엽만 프로가 아니라, 모든 월급쟁이가 프로페셔널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2004~2005년 삼성카드와 삼성그룹 중국 본사 사장을 거쳐 작년 12월 삼성생명 사장이 됐다. 7일 있었던 삼성그룹 사장단 인사에서도 유임이 결정됐다. 연매출 26조원으로 삼성그룹 내 최대 금융 계열사인 삼성생명에서 임직원 6000여명을 이끄는 자리다. 금융계에선 그를 "실력과 성실함으로 지방대 출신을 가로막는 유리천장을 뚫은 인물"로 평가해 왔다.

삼성생명에 그의 이력을 따라 밟는 젊은이가 적지 않다. 올해 삼성생명에 입사한 신입 사원 227명 중 71명(31%)이 비(非)수도권 대학 출신이다. 지난해에도 28%였다. 올해 삼성생명 최종 면접에 참석한 임원들은 "이번에 가장 눈에 띈 합격자도 부산 부경대 출신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학점도 변변찮고, 영어 점수도 없고, 자격증도 없었지만 대학 생활 내내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해 점장까지 승진한 이력이 임원들 눈을 잡아챘다.

삼성 관계자는 "신입 사원 면접에 들어가는 임원들은 '60㎝ 인생'을 뽑지 말라는 말을 귀가 따갑도록 듣는다"고 했다. 눈과 책 사이 거리인 60㎝ 안에서만 세상을 보는 젊은이는 뽑지 않겠다는 뜻이다.

박 사장은 "나는 노력해서 국내 리더가 됐다. 여러분은 본인의 브랜드, 출신 학교의 브랜드를 절대 잊지 말고 국내가 아닌 글로벌 리더가 되라. 사랑한다"는 말로 50분 강연을 끝맺었다. 그는 기자에게 "지방대 출신 후배들에게 힘을 주기 위해 내 자랑을 너무 많이 한 것 같다"고 멋쩍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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